이 글은 영화 '부활(RISEN)'의 스포일러(영화의 줄거리나 주요 장면)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클라비우스(조셉 파인즈 분)는 호민관으로, 유대 총독 빌라도(피터 퍼스 분)의 오른팔이다. 로마 군인으로 숱한 전투를 치렀다. 로마제국 보병 부대를 이끄는 그의 곁에는 언제나 죽음이 함께한다. 그의 일상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로 점철돼 있다. 로마제국 질서에 반기를 드는 이들의 숨통을 끊는 것이 그의 일이다.

 

이번에도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봉기를 일으킨 바라바와 그의 부하들을 처단했다. 죽기 직전 바라바는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제국은 끝이야"라고 외치지만, 그런 바라바의 외침은 그에게 닿지 않는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바라바의 머리에 칼을 내리꽂는다. 일을 끝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난데없는 빌라도의 호출을 받는다. 십자가에 달린 한 죄수를 처리하라는 것이다.

 

▲ 클라비우스는 호민관이다. 호민관은 고대 로마에서 군사적인 문제를 처리했던 관리다. 클라비우스는 극 중 유대 총독 빌라도의 오른팔로 나온다.

 

갑작스레 하늘이 어두워지고, 지진이 일어나는 게 뭔가 심상찮다. 현장에 가 봤더니 3명의 죄수가 십자가에 달려 있다. 중앙에 있는 문제의 죄수를 지켜보는 백부장도 상태가 이상하다. 흐느끼고 있는 백부장의 눈시울이 붉다.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죽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죄수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다 이루었도다."

 

뭔가 특별한 게 있는지 살피려 죄수를 쳐다본다.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 왠지 섬뜩하다. 시체를 끌어내리라고 시키는데,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의 인장이 찍힌 문서를 가져온다. 무덤에 안치하려고 하니 시체를 내 달라는 것이다. 물었더니 가족도 아니란다.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이 수레와 사다리를 끌고 와 죄수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끌어내린다. 이때까지도 그는 이 사람의 시신 때문에 며칠간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을 겪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추리극의 외피를 두른 종교 영화 '부활'(RISEN)

 

▲ '부활'(RISEN)은 지난 17일 개봉했다. 예수 부활 후 며칠간을 스크린에 담았다.

예수의 부활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 '부활'(RISEN, 2016)의 앞부분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클라비우스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 제작진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달라서 '부활'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후속편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영화가 시종일관 취하고 있는 태도 역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추구했던 극단적 사실주의와 거리가 멀다. '부활'은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 부활 후 며칠을 담아낸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예수의 죽음까지 마지막 24시간을 성경에 기반해 낱낱이 묘사했다면, '부활'은 상상력을 발휘해 극적인 요소를 더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짧은 성경 기록에 기초한 만큼 등장인물 수가 제한적이다. 예수의 십자가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외부 배경들을 동원해 시대상을 추측하게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배우들이 아람어를 사용할 정도로 고증에 치밀했다. 반면 '부활'에는 성경에 잘 드러나지 않는 호민관과 그의 보좌관, 군인들 모습이 비춰진다. 인물 간 관계나 대화로 유대 지역 주변 정황과 환경을 드러낸다.

 

감독 케빈 레이놀즈는 추리극으로 이 영화의 컨셉을 잡았다.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의 무덤을 직접 인봉까지 한 호민관을 앞세워 예수의 시신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전개 방향은 수사를 진행하는 호민관 클라비우스가 '부활한 예수'를 목격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목격 이전에는 추리 영화가 자아내는 특유의 극적 긴장감으로 관객을 몰아세우고, 목격 이후에는 철저하게 종교 영화의 색채를 유지한다. 약간은 어그러진 조합 같은데, 메시지에 있어서는 한 흐름으로 묶인다.

주인공 클라비우스는 야심은 있지만, 다른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에 쩌들어 있다. "확신", "평화", "죽음이 없는 일상"을 꿈꾸는 클라비우스의 모습은 '로마의 평화'(팍스로마나)를 떠받치는 기둥이 얼마나 '평화'와 거리가 먼 것인지 대조적으로 보여 준다.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어떻게든 유대인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축소시키려 노력하지만 제 뜻대로 못하는 빌라도의 모습을 통해 권력의 덧없음을 보여 준다. 클라비우스의 보좌관 루시우스(톰 펠튼 분)는 어떻게든 한몫 잡고 싶어 안달이다. 루시우스-클라비우스-빌라도의 모습은 출세를 지향하는 이들의 과거-현재-미래처럼 보인다.

 

▲ 클라비우스는 그의 보좌관 루시우스와 함께 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는 가정하에 수사를 진행한다.

 

영화는 현장 조사, 증인신문의 피곤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 준다.

클라비우스는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는 현장에서 밤새 보초를 선 부하 두 사람의 증언에 기초해 수사를 진행한다. 부하의 증언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깜박 잠이 들었을 때 제자들이 창을 들고 로마 군인인 자신들을 협박했다고 말한다. 칼로 밧줄을 잘랐다는데, 밧줄은 잘렸다기보다 터졌다고 보는 것이 맞고, 무덤을 막은 돌은 저 멀리 나가떨어져 있다. 말이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클라비우스는 여러 사람을 협박도 해 보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겨우 부활을 목격했다는 막달라 마리아(마리아 보토 분)와 예수의 제자인 바돌로매(스티븐 헤이건 분)를 끌고 온다. 그런데 한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원한다", "마음을 열면 보인다"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고, 제자라는 사람은 웃음병에 걸린 것마냥 뭐가 즐거운지 웃기만 한다. 예수가 어디 있냐는 질문에 "모든 곳에 있다"는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예수가 부활하는 게 로마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더니, '사랑'을 주창하는 그분의 관심은 로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의 부활이 보여 주는 것

 

잠입 수사와 수색 작업 끝에, 마침내 제자들의 본거지를 알게 돼 그들이 있는 현장을 급습한 순간 클라비우스는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만다. 부활한 예수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놀라는 것도 잠시, 제자들 사이에 있던 예수가 갑작스레 사라지고, 예수가 남긴 메시지를 토대로 제자들과 함께 떠난다. 뒤늦게 그 현장을 찾아온 부하들에게는 이런 쪽지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나는 모순되는 두 가지 일을 겪었네.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사람이 되살아났다네."

 

예수에게 뭔가가 있음을 직감한 그는 제자들을 따라 갈릴리로 간다.

갈릴리에서 "무엇이 두려운가?" 묻는 예수에게

 "이게 진실인지, 모든 걸 걸어도 되는지…."라고 답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 전반부를 놓고 보면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영화 기조가 많이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을 수긍하고, 예수의 승천을 목도한 뒤 감격에 가득 차

예루살렘을 비롯한 곳곳으로 떠나는 베드로(스튜어트 스커다모어 분)와 제자들 모습과 달리 그는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는데, 여기서는 현실감이 묻어난다.

 

▲ 주인공 클라비우스가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승천을 목도하는 장면.

 

영화는 도상에 있는 여행자 휴게소에 들른 클라비우스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호민관의 반지를 빼서, 그 반지로 음식을 계산하고, 황량한 돌길을 다시 걸어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휴게소 주인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문에 대해 묻고, 클라비우스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준 것처럼 보이는데, 클라비우스의 마지막 대답이 인상적이다.

 

"확실한 것은,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갈릴리에서, 클라비우스는 예수가 부활할 것을 믿었느냐고 바돌로매에게 묻는다. 바돌로매는 예수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고 답한다. 그러면 그전에는 왜 그를 따랐느냐는 말에 고갯짓을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에 나타난 문둥병자를 끌어안고 치료하는 예수의 모습이 비춰진다. 거기서 "확신", "평화", "죽음이 없는 일상"을 원한다는 클라비우스의 바람이 오버랩된다. 예수가 문둥병자를 끌어안고 다독이는 장면은, 예수의 '부활' 자체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결국 신앙의 본질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부활'은 한국에서 개봉 5일 만에 4만 명에 가까운, 전 주에 개봉한 교황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프란치스코(Francisco, 2015)'의 2배를 넘어서는 누적 관객 수를 보이면서 종교 영화로서는 썩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부활절을 맞아 영화 '부활'로 그 의미를 묵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추리극을 보듯이, 예수의 시체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부활한 예수를 목격하고 갈릴리를 향해 떠나는 과정은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求道) 과정에 비견된다.

 

구도의 과정 끝에, 호민관 클라비우스는 자신이 끼고 있던 호민관의 반지, 즉 자신의 지위를 버렸다.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러 각지로 흩어졌다. 하지만 클라비우스가 다른 제자들처럼 기쁨에 차서 복음을 전하며 일평생을 살아갈 것 같지는 않다. 당장 그에게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가 이전의 삶을 다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탈영병과 같은 신세로 전락한 그가 앞으로 얼마큼 방황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그는 구도의 길을 계속 걸어갔을 것이다.

방황의 끝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영화는 호민관의 지위를 버린 클라비우스가 돌길을 걷다가 여행자들의 쉼터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시 길을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