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를 읽고
김교철 2019-12-17 18:19:43 3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를 읽고

 

書名: 리영희. 임헌영.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 경기도: 한길사, 2010.

독서기간: 201910-11

독서종료일: 2019116

기록: 김교철

 

      리영희 책 1권을 대출했다. 리영희는 어떤 인물이며, 무슨 사상을 전파하려고 이 책을 발간했는지 궁금했다. 리영희는 일제 강점기와 조국 분단, 6.25 전쟁, 대한민국의 여러 정권을 경험한 한 시대의 인물로 매우 투쟁적인 삶을 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즉 군인과 기자, 언론인으로 시대의 풍파를 몸소 경험한 사람이다. 리영희는 1929, 평북 운산군 북진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7세에 해방을 맞게 된다. 그리고 1995년에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였다. 194719세에 월남한 후 78세가 넘도록 자유 대한민국에 살았지만, 그가 말하는 대한민국은 그의 고향이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으로 약칭)보다도 못한 나라이다. 리영희에게 대한민국 사회는 반도덕, 인간소외, 이기주의, 범죄의 생활체제화된 사회로 이를 보면서 나는 소름이 끼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북한과 비교하기를 이런 인간형과 사회가 그래도 북녘 땅의 인간과 사회보다 우월하다는 건가?”라며 대한민국에 대하여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리영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북한을 그리워하고, 자신이 경험한 대한민국보다 북한 사회와 인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리영희는 자신을 무신론자로 규정하면서 종교의 정신적 아편성을 인식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리영희는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기독교에 대해서는 매우 냉소적이다. 그는 기독교를 미신성, 반과학성, 반지성, 열성, 독존성, 비인간성, 반관용, 잔인성, 이중인격성, 반동성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리영희는 대한민국의 반공주의를 이성과 지성을 상실한 광적 반공주의로 폄하하고 있다.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를 남한사회의 역대 폭력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월남 기독교인들을 이러한 반공주의와 폭력체제를 옹호한 세력으로 비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회고 가운데 세습독재 정권이자 노예사회로 전락한 북한정권의 비인간화와 폭력성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그토록 비판적이라면, 북한 세습독재 정권에 대하여서도 비판적이어야 공정한 잣대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리영희는 북한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다. 리영희의 몸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북한에 두고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영희는 우익은 아니다. 오히려 좌익에 대하여 우호적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방금도 말했지만, 국내에서는 우익적 사상의 지식인들은 이광수나 김동인, 서정주뿐 아니라 거의 모두가 친일파가 됐던 거요. 좌익 인사들이 항일과 독립운동의 주축이었지. 해방 후 세대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하고, 또 그 사실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어.” 리영희에 의하면 우익은 거의 모두가 친일파가 되었고, 항일과 독립운동은 좌익 인사들이 했으니, 그 사실을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좌익 인사들에게 긍정적인 평가와 모든 공을 돌리고 있다. 즉 그는 좌익 인사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주면서, 해방 후 세대는 이 사실을 음미해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리영희는 8.15 해방 후 남북한 사회를 묘사하면서 이북에서는 새 나라 건설을 위해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민족정기가 넘쳐 있는데, 같은 시각 남한은 썩은 술을 낡은 부대에 그대로 담는 꼴이라며 북한 공산당 주도의 북한 사회를 민족 정기가 넘치는 새로운 사회로 격찬하고 있다. 그러면 리영희는 왜 그가 그토록 선망하는 북한 사회를 버리고 월남하여 자유 대한민국에 남아 있었는가? 6.25 전쟁 기간에 통역장교로 근무하다가 대한민국 육군 보병소령(주특기 통역)으로 예편한 리영희는 대한민국의 군대가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할 어떤 당위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마져 품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북한 군대가 승리했다면 리영희는 박수를 쳤을 것이다. “또 이승만으로 상징되는 이 정부와 이런 군대로 전쟁에 이긴다면, 북녘 동포에까지 남쪽 사회의 질병과 불행을 들씌울 것이 아닌가, 그것이 민족이 원하는 통일일 수 있는가, 그 미래가 어떤 꼴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광장한 회의에 빠진 일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리영희는 대한민국과 그 군대에서 복무하면서도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산주의 이북에 대하여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그는 오히려 민족의 항일투쟁과 광복운동을 비롯해 억압받는 가난한 인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했던 공산주의, 사회주의 지하 운동 역량의 결합체인 북쪽의 승리가 반드시 거부돼야 하는 것일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본 일이 있어.”라고 말하면서 차라리 북한 군대의 승리를 희망하기도 했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리영희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의 부조리를 보면서 오히려 북한 사회와 북한 군대의 승리를 희망하는 반국가 좌익적 사상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리영희는 합동통신사 기자로 일했는데 당시에 그는 자신의 사상적 경향은 자본주의 국가사회의 그 어느 신문과도 다른 성격, 다시 말해서 사회혁명에 동조했고, 제국주의와 백인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로 치닫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사회주의적 세계관과 역사관을 토대로 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또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많은 서적들을 읽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남한의 진보적 지식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리영희는 1960년대 중반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부터 중국혁명,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의 가능성, 3세계의 좌익 혁명운동, 중소 이념분쟁 등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금서들을 읽었다. 당시 리영희는 대한민국 정부의 모순과 부조리에 눈뜨게 되면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에 동조하는 사상적 전향이 진행되고 있었다. 리영희는 당시 자신의 관심은 세계 피압박 인민의 해방과 그 방법으로서 사회혁명에 대한 공감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자본지배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는 이론적. 사상적 이해의 작업이 둘째였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의 대한민국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부정부패. 약육강식의 전형적인 추악하고 암담한 사회로 인식하고 있었다. 즉 그는 반정부, 반미, 반자본주의, 반서구 지식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리영희는 친공산주의, 친사회주의, 친북 인사가 되고 있었다. 그러한 사상적 좌경화의 노선에서 리영희는 이론적 제시와 언론. 문필 활동으로 의식화 작업, 다시 말해서 주로 지적인 작업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여, 대한민국의 음지에서 언론인으로 좌익혁명을 위한 지적 토대 구축 작업을 자신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리영희의 반 대한민국 정서는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 사용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런 인간을 건국 초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한 이 나라 국민들이 바보였고 불행했지!”라는 말로 이승만과 대한민국 국민을 폄하(貶下)하고 있다. 리영희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사실상 미국의 반식민지 내지 보호국이라는 견해를 분명하게 표명했으며, 미국을 음흉한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봉암에 대해서는 조봉암의 적극적인 지지자나 이념적 신봉자는 아니지만, 장기적 안목으로는 그의 민족철학이 옳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리영희는 반미주의자로 한국 기독교인들을 미국하면 껌뻑 죽는 자들로 비하하고 있다. 동시에 반공보수주의자들, 자본가와 돈 가진 사람들이 정신 차릴 날이 언제인지 하면서 한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리영희는 반공 사상을 버리고, 북한과 중공의 공산당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자는 노골적인 주장은 피하고 있다. 리영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즉 한반도의 통일독립정부를 수립을 공약했던 미국이 1948년에 미국의 꼭두각시인 이승만을 데려다가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한반도의 영원한 분단체제를 획책했다고 말한다. 즉 대한민국 수립은 미국의 약소국 지배 술책이며, 미국을 한반도 분단의 원형으로 몰아가고 있다. 베트남 전쟁 역시 미국의 조작으로 발생한 전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호치민을 한국 국민이 이런 지도자를 한번만 가져볼 수 있다면이라면서 호치민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에 대해서는 훌륭한 독립투사, “미국과도 싸운 사람으로 숨은 존경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리영희는 자유 남베트남 군대를 실질적으로 외세의 용병이나 괴뢰군대로 비하하고 있으며, 공산 북베트남과 호치민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그런 민중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러한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베트남 인민은 세계 최대 최강의 미국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리영희의 안중에는 자유 남베트남은 존재하지 않으며, 북베트남의 베트공 인사들을 항불, 항일, 그리고 물론 현재의 항미 독립투사로 극찬과 존경을 나타내기에 인색하지 않다. 그의 사상과 글에서 반공주의 사이공 정권은 멸망되어 마땅한 정권이고, 오로지 베트공 주도의 북베트남 민족해방 세력만이 정의로운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 가운데는 미국의 우방인 대한민국은 미제의 괴뢰정권이며, 공산주의 김일성 정권만이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보호하고 지원했던 괴뢰적인 국가들은 다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범죄적이고 타락한 국가들로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그토록 흠모하는 공산독재국가인 북한과 공산당 일당 지배의 중공(中共), 북베트남의 인권유린과 독재 그리고 공산당 부패에 대하여서는 침묵하고 있다. 아니 아예 언급조차 피하고 있다. 리영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해서 한국인들의 머리는 시효가 다 지난 반공주의라는 마취제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요. 가련하지라며 혀를 차고 있다. 이 말은 즉 공산주의체제를 동경하는 자신은 제 정신을 차린 사람이며, 공산주의 체제 속에 사는 북한과 중공 인민들은 모두 제 정신을 차린 자유시민이라는 것이다.

리영희는 북한 공산당 체제 하의 북한 주민들의 삶에 대하여 고민해 보았는가?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 하의 중공(中共) 인민의 삶의 노정을 공부하고도 공산체제에 대한 찬양을 계속하고 있는가? 이러한 사상적 발전을 거듭하던 리영희 같은 인물이 베트남전쟁 기간에 조선일보 외신부장과 1970년대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언론을 통해서, 대학에서 한국인 특히 무지몽매한 한국 지식인들에게 전하려고 많은 글을 발표하고, 많은 강연을 하면서 이러한 좌익 사상을 확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이 진실이고, 자신과 반대되는 것은 다 비진리라는 강한 확신을 품고 있었다. 리영희는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끝없는 저주와 분노를 퍼부었으며, 사회주의 정권에 대해서는 환상과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의 사고에 의하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악의 원천이며, 사회주의와 공산혁명을 이룩한 나라들이야말로 인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인데, 그에 대하여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공산주의자들은 정직하고 믿을만한 자들인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는 인류의 대안인가? 북한 공산당 그리고 중공 공산당이 이러한 신념을 확증시켜주었는가? 사회주의 공산 정권은 과연 자유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는가? 리영희는 대한민국의 언론계에 대해서 광적 반공 이데올로기의 중병에 걸린상태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리영희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은 민주주의, 반공, 자유의 가면을 앞세워 베트남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벌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죽고 다친 한국군들의 희생은 거론조차 안하고 있다. 반대로 남베트남의 패배로 베트남이 공산화된 사건에 대하여 이것은 아무리 미국이 세계 무적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끝내 억누르지 못했던 피압박 민족의 위대한 승리, 미국과 남한을 제외한 전 세계 인민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현대사의 일대 사건이라며 친공 좌파적 시각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그 결과로 자유 남베트남 지도부와 국민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망명의 길을 걷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되는 사건을 긍정적으로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영희는 한양대학교 중국문제연구소 사업에 관여하게 되는데 그는 중국 공산당이 지향하는 미래의 중국 사회체제, 중국 인민의 새로운 가치관, 그것을 인민의 생활로 구현할 새로운 사회구조와 정치형태 등에 관한 모택동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실천적 행동양식에 공감했다고 말한다. 리영희는 중공(中共)의 지도자 주은래에 대하여 “19761월에 내가 그토록 존경하던 주은래 수상이 사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리영희는 1977년에 8억인과의 대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저서 등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된다. 리영희는 자신의 중공 연구는 한국 지식인과 대학사회에 외부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 변혁 전반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병적인 극우반공 교육의 해독을 상당한 정도까지 중화시킬 수 있었다는 자부심으로 만족했다고 말한다. 리영희는 대한민국을 남한으로 호칭하기를 즐겨하고, 반공정신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언론과 학술 활동을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감 있게 자신을 나는 군부독재, 극우, 광적 반공주의자들의 의식화의 원흉이 되었다면서 영광이지. 하하하!”라며 자축하고 있다. 리영희는 자신이 공산주의 사상을 확산시켜서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공헌을 한 것처럼 영광 운운 하고 있다. 리영희는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19801월에 광주교도소를 나왔다. 리영희의 사상 체계에는 반공사상을 기치로 동맹관계를 구축한 대한민국과 미국은 타도의 대상이고, 공산주의 사상과 이론으로 무장한 북한과 중공, 베트공은 정의요 진실이라는 도식이 새겨져 있다. 리영희에게 있어서 미국의 악의 축이고, 공산 국가들은 피압박 민족과 민중을 상징하는 정의로운 국가요 이상적인 체계라는 강한 믿음이 구축되어 있다. 리영희의 사고에서 미국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나라이며, 호전적인 국가이므로 악의 대상을 만들어 전쟁을 즐겨하는 호전적인 국가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리영희는 근본주의 기독교 집단이 강해질수록 미국이 전쟁을 해야 할 종교적 필요성은 증가하고, 인류가 겪는 재앙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그들의 목적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고백을 통해 리영희는 기독교와 미국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근본주의 기독교야말로 악의 원형이며 전쟁광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리영희는 자신이 공산주의 이론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화와 의식화를 위한 영웅적인 행동이라는 확신 가운데 있었다. 리영희가 역대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하여 저항하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역대 대한민국 정부와 지도자들이 모든 면에서 옳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공산주의와 좌익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을 위해 노력한 것은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산당 주도의 사회주의 이론이야말로 정의요 진실이라는 거짓된 확신이 리영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가 사회주의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리영희는 나는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고와 신념에서 유일신 신앙과 절대적 존재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즉 자신의 깨달음이야말로 진실이며 절대적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리영철은 독일 방문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남한(한국)도 사회주의를 공인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자본주의 정당과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정치, 즉 사회민주주의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즉 리영철은 독일과 북유럽 국가처럼 대한민국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이 들어서서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발전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즉 리영희는 체제수렴적 통일론을 주창하였다. 책 한 권을 읽고 리영희는 사상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리영희의 고백적 회고록을 통해 극도로 분열된 대한민국 사상계를 지배하는 좌익의 현주소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신론과 유물주의, 사회주의 세계관으로 무장된 인물 리영희를 보면서 사상 무장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리영희 뿐만 아니라 좌파 사상가들의 저작들을 구해서 읽으며 좌파 사상계의 이해 지평을 넓혀야겠다.()

 

글/김교철

2019.12.17(화) 수정

Asuincion, Paragu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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