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대한 김동호 목사의 sns
전명환 2016-04-28 15:18:45 166

 

김동호 목사가 최근 십일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주목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그의 글을 둘러싼 토론거리들 중  

가장 핵심적인 질문 하나를 놓고, 응답에 나섰다.  

십일조를 꼭 교회에 내야만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의 형성 배경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김 목사는 "교인들이 십일조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인들이 낸 십일조를 십일조의 정신에 맞게 교회가  

바로 잘 사용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십일조가 원칙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십일조를 선교와 구제활동에 직접 사용해도 되지 않느냐는 얘기다. 

이에 김 목사는  

"나는 십일조를 교회에 낸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선교나 구제를  

십일조로 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 목사는 이어 "십일조로 나는 빵을 사지 않는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빵은 십일조를 뗀 나머지 돈, 하나님이 내게 허락해 주신 내 몫의 돈으로 산다. 

 그와 같은 동일한 이유로  

나는 십일조로 선교나 구제나 후원을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십일조를 원칙대로 사용하지 않는 교회를 언급했다.  

 

김 목사는 

 

 "교인들의 피 같은 십일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낭비하는

교회들이 제법 많이 있다"면서 

 "내가 교인이라도 그와 같은 교회에 십일조 헌금을 드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와 같은 교회에는 헌금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목사는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선교나 구제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꺼려지는 교회는  

교회에다 헌금을 안하는 것 정도로는 부족하다. 떠나야 한다.  그리고

십일조가 아니라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교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1."죽기 살기로 좋은 교회를 찾고 십일조를 그 교회에 내는 것이 옳고 좋다.  

왜 학교는 좋은 학교를 찾아 천지 사방을 헤메면서도  

교회를 그냥 적당히 가까운 교회를 선택하는지 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좋은 교회를 찾아 그 교회에 십일조 내고 그 돈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는 데 가장 좋은 훈련

성직자라면 ‘가진 자들의 사회적 회심’ 촉구해야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레 27:3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

 

십일조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일부 교단에서는 ‘교인의 의무’로 규정해 헌법에 명문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번엔 온라인에서다. 논쟁은 지난 21일 오전,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가 “개인적으로 나는 십일조 헌금을 매우 중히 여긴다”면서 자신의 SNS에 올린 ‘마하나임 10’으로 시작됐다. 이후 십일조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한 청년사역연구소장 이상갑 목사, 새물결아카데미 대표 김요한 목사의 글들이 21일 오후와 22일 각각 뒤를 이었다.

# 말라기서의 말씀, 문자적으로 확신

김동호 목사는 “하나님을 코너로 모는 배짱”을 강조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는 아주 엄격히 (십일조 생활을) 요구하여 거의 율법적으로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십일조에 관한 말라기서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믿는다”면서 당위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적인 복을 받고 싶어서도, 그런 말로 교인들에게 십일조를 설교하고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 또한 밝혔다.

십일조를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는 데 가장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 김 목사는 “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할 수 있으면 그 밖의 다른 욕심들은 비교적 쉽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마하나임의 군사로서 욕심과 싸워 하나님 나라를 쟁취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십일조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십일조 훈련의 덕을 제법 보았다는 고백도 털어놓았다. 미국 교회 청년들의 십일조 생활에 자극을 받아 누진 십일조 생활을 연습했고, 십일조를 넘어 십의 사점 칠팔조(4.78/10)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 이에 더해 “헌금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라는 확고한 입장을 드러냈다.

▲ 십일조는 헌금과 관련해 성경이 직접 언급하는 규정이다. 하지만 이 규정은 진-보수 혹은 시대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김 목사의 글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십일조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페이스북 마당이 한산해 질 줄 알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십일조 강조에 대해 그만큼 우려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깜짝 놀랐다. 그 부담스러운, 공포스러운 십일조 글에 많은 친구들이 동조했다. 놀랐고 감사했다”며 반응을 소개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배짱이 없다면 작은 믿음 하나도 실행할 수 없다. 십일조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마하나임의 군사들은 하나님을 코너로 모는 배짱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을 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십일조의 핵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청년사역연구소장 이상갑 목사는 ‘의무가 아니라 은혜’로 십일조를 해석한 글을 올렸다. “아무리 좋은 것도 하나님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로 글을 시작한 이 목사는, “‘가져오라’는 단어에만 주목하고 머문다면 율법의 의무에 묶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하여 보라’로 나아가면 은혜가 보인다”며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고 자녀 자격을 박탈하지 않으신다. ‘넌 자격이 없다’라고 하시지 않는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고 싫어하시거나 미워하시거나 벌을 주시지 않는다. 그리 쫀쫀한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서 하나님이 치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목사는 오히려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은혜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자원함으로,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다. 은혜는 십일조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십일조를 섬김에 흘러가게도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십일조와 헌금의 핵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정확한 십일조에 대한 계산보다는, 우리 삶에 대한 정확한 계산을 하시기를 원하시고,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져 가고, 이것이 바로 십일조 정신임을 역설했다.

하루 뒤인 지난 22일, 이번에는 김요한 목사(새물결아카데미 대표)가 논쟁에 뛰어들어, “우리 사회 전반,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생활수준이나 형편 전반의 사정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김동호 목사의 십일조 이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 개신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리더라면, 최저 생활비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입에 허덕이는 교인들을 양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소득구조를 혁파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적, 사회적 노력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김 목사는, “가진 자들의 사회적 회심을 촉구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의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십일조의 시행을 촉구하는 것이 올바른 성직자의 도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종교라는 것이, 신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에게는 엄중하고 냉정한 십일조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을 갖고 있는 힘 있는 자들에게는 겨우 개인적 차원의 연보만 강조할 뿐 그들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서는 침묵한다면, 이런 종교야말로 민중의 아편 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온라인에서 재 점화된 십일조 논쟁은 글마다 수백 개씩의 댓글들이 달렸고, 수십 수백 회 공유로 이어지면서 퍼져나가, 십일조에 대한 신앙적 이해가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논의의 장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종은 기자 jekon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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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꼭 교회에 내야 하나

"함께 먹고 즐거워할" 십일조

 

신성남 canavillage@yahoo.com | 2016.05.19 07:37:22

 

근자에 "십일조를 꼭 교회에 내야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교계의 원로인 K목사가 한 답변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나는 십일조를 교회에 낸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선교나 구제를 십일조로 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K목사는 이어 "십일조로 나는 빵을 사지 않는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빵은 십일조를 뗀 나머지 돈, 하나님이 내게 허락해 주신 내 몫의 돈으로 산다.

그와 같은 동일한 이유로

나는 십일조로 선교나 구제나 후원을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십일조로 나는 빵을 사지 않는다", 과연 옳은 말일까

 

물론 그렇게 발언한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상당 부분 다른 점이 있기에

부득이 여기서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많은 교인들은 '십일조'라고 하면

대개 구약의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과 성전 관리를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성 안에 거류하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것으로 흔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 상식 자체는 그다지 틀린 것이 없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은 지금도 과거 구약의 율법을 명분으로 한 십일조를 걷어

교역자 생활비, 교회당 관리비, 그리고 가난한 이웃의 구제에 쓰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는 그중에서 구제에 쓰이는 비중이 너무 적어 따가운 지적을 받기도 한다.

 

반면에 일부 목회자들은 십일조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에 대해서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전술한 대로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라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이런 단순한 해석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힘든 명령을 다음과 같이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십일조)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신14:26)

 

성경은 심지어 십일조로 '독주'까지도 사서 권속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속이란 가족이나 가솔을 의미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신14:29)"도 와서 함께 먹고 배부르게 하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십일조가 '하나님의 돈'이니 감히 손대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다른 특별한 제한 없이 그 돈으로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해서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감스럽게도 K목사의 일부 발언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주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구약 십일조의 다른 중요한 의미는 단순히 '바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과 이웃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것'이란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독한 술까지 권하시며

 이런 신나는(?) 명령을 내리셨을까. 그 해답 역시 성경에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14:23)

 

즉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성막)'에 모여 십일조를 함께 먹으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십일조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래서 결국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손수 전하신 복음의 핵심과 그대로 직결된다.

 

십일조를 왜곡하는 종교인들

 

이제 신약시대의 성전은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 자신이다. 따라서 구약 십일조의 본래 정신에 따르자면, 필요시 십일조를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위해 즐겁게 쓰는 것도 지극히 성경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헌데 어떤 목회자들은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을까.

같은 성경을 들고 왜 딴소리를 하고 있을까. 말라기는 열심히 가르치면서

왜 신명기는 대충 넘어가는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직접 "먹고 즐거워할 십일조"의 중요성을 간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십일조를 모두 교회당에 바치지 않으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떼어먹는 것이다"라고 교인들에게 호통치는 위인들이

아주 많았다. 성경은 분명히 성도들에게 자신의 십일조를 직접 먹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했건만 전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십일조를 잘 바쳐야 복을 받는다"고 하며 기복적인 '바침'을

수시로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시대착오적인 설교 덕분에 중대형 교회의 일부

목사들은 불의한 재산을 크게 축적하고 호사를 누리며 즐겁게 잘 먹고 잘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하거나, 또는 그게 아니라면,

십일조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들은 십일조의 정신을 온전히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1:10)고 말씀하셨다.

당시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에 의해 변질된 제물을 거부하신 것이다.

오죽하면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기를 원하셨을까.

 

또한 하나님은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1)고 말씀하셨지만,

저들은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제물을 매우 기뻐하시는 것처럼 "

돈을 열심히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제물은 그런 게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물질이 부족해서 피조물인 인간의 제물을 그리 원하실까.

 그건 아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성결과 선행과 정의를 원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1:16-17)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성도들은 바르게 알고 실천해야 옳다.

구약의 십일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이다.

역사적으로 성전 제사 제도의 종결과 함께 율법의 십일조는 완료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의 초기 교회에 구약 율법에 따른 성전 십일조란 결단코 없었다.

신약 교회에 유일한 헌금은 오직 '자원적 연보'만이 있었을 뿐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게 본래 개혁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의 교회들 대부분이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십일조는 사람을 위한 것

 

십일조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십일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율법주의자들과 교권주의자들은 마치

사이비 무속 종교처럼 헌금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어찌 하든 신도들을 교회당 안에 속박하며 교회의 단물을 빨려고 한다.

 

그 결과 순진한 교인들은 부모가 빈궁해도 바치고, 형제가 배고파도 바치고,

자식이 아파도 바치고, 그리고 가난한 이웃이 울어도 먼저 교회당에

십일조부터 통째로 바쳤다. 그리고 그게 좋은 믿음인 줄로 착각했다.

또한 교회가 앞장서서 그런 교조적 바침을 대단히 숭고한 신앙적 헌신으로 칭찬하고 격려했다.

 

그러나 그건 바른 십일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율법'을 오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하는 배도한 행위다.

 차라리 그 돈으로 먼저 빈궁한 부모를 돌보고, 배고픈 형제와 나누고,

 아픈 자식을 고치고, 그리고 우는 이웃의 눈물을 씻어 주어야 옳다.

 

나는 지금 교회에 헌금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할 수만 있다면 많이 헌금하기 바란다.

교회의 바른 사역을 위해 적절한 재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과 친인척과 이웃을 먼저 돌보지 않는 교회당 헌금은

성경의 십일조 정신을 크게 곡해하는 것이다.

 

현대판 바리새인들은 지금도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를 삼키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 위대한 계명을 주신 적은

결단코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 개혁 교회는 더 이상 헌금이니 십일조니 하는 따위로

기만적 구실을 만들고, 어줍지 않은 교권으로 가난한 성도를 억압하거나

속박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건 종교업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성경이 명시한 진정한 십일조의 정신은 성도들과 이웃들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며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로 나의 가족이 먹을 빵을 사는 것은 매우 옳은 일이다. 그리고 배고픈 형제와 가난한 이웃이 먹을 빵을 사면

그것은 더더욱 거룩한 일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성도가 성전이기 때문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14:23)

 

관련 자료 다운로드: 한국교회의 변절과 십일조 강요(2016 개정판, 총 69페이지)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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